얼마 전 인터넷을 검색하다 제 시선을 사로잡는 책 한권을 보게되었습니다.   "삼성을 생각한다" 라는 책인데요  벌써 2년 6개월 전인 2007년 10월에  삼성에 근무하다 퇴직한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그룹의 비자금 운용에 관한 비리와 부조리를  천주교 정의 사제단를 통해 양심선언을 한 모든 내용을 한권의 책으로 발간했네요.  인터넷에서 책을 구입해서 이렇게 리뷰합니다.


                           ▶ 사진참조 - 아이뉴스24   http://itnews.inews24.com/php/news


당시 기억을 더듬어 보면 결국 이건희 vs 김용철의 싸움은  누구나 예상한데로 이건희의 승리로 일단락되었죠? 더군다나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께서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구실로 이건희씨를 전격 사면까지 해 주었으니 당연 이건희회장으로서는 다시 삼성으로 복귀해야할 만한 정당한 사유가 만들어진 셈이죠~ 

일단 책 내용은 일단 많습니다. 하지만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는 내용들이 가득차 있습니다. 지금까지 젠틀하고 초일류기업의 이미지였던 삼성의 일면과는 다르게  치졸함과 부조리, 그리고 부패로 얼룩진 삼성의 단면을 리얼하게 그리고 있었습니다.  글로벌 리즘을 추구하던 삼성의 이면을 보게되어 엄청난 배신감을 갖게 되었네요.  

책 내용 중 일부 흥미있는 내용만 일부 게재합니다. 꼭 사서 보시길~~~

박연차 수사와  이건희 수사
2009년 5월 23일. 온 나라가 충격과 슬픔에 빠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날 아침 고향인 봉하마을 부엉이 바위에서 스스로 몸을 던졌다. 그의 죽음은 반인권적인 정치 수사의 결과였다. 죄가 확정되기 전에는 피의사실을 함부로 공개하면 안 된다는 것은 고등학생도 아는 상식이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의 측근이 연루된 박연차 게이느 사건 수사에는 이런 상식이 철저히 외면당했다. 마치 스포츠 중계하듯 검찰은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다 언론에 흘렸다. 노 전 대통령이 느꼈을 모욕감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중략)

박연차 수사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 게 삼성비리에 대한 수사다. 사실 박연차 게이트와 삼성 비리는 본질상 크게 다르지 않다. 차이가 있다면 비리의 규모다. 삼성 비리 쪽이 압도적으로 규모가 크다. 세상에 알려진 삼성 비리는 크게 세 가지 범주로 나뉜다. 정,관,법조계 등에 대한 불법 로비, 비자금 조성 및 탈세, 경영권 승계 등이다. 이 가운데 앞의 두가지는 박연차 전 태광실업회장이 저지른 비리와 같은 종류다.
그런데 박연차는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았다. 반면, 이건희 전 삼성회장은 실형을 피했다. 누가 봐도 고개를 갸우뚱할 수 밖에 없다. (중략)

박연차는 정,관,법조계에 폭넓게 돈을 뿌렸다. 삼성도 그랬다. 돈을 뿌린 범위는 더 넓었고, 규모도 더 컸다. 차이가 있다면, 박연차는 불법 로비를 자신이 직접 챙겼고, 삼성은 구조본을 통해 처리했다는 점이다. 삼성이 더 조직적으로 비리를 저지른 셈이다. (중략)

비자금 문제도 마찬가지다. 삼성비리를 수사한 특검은 해외 비자금은 수사할 수 없다고 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다. 그러나 박연차 게이트 수사에서 검찰은 박연차가 관리한 해외 비자금을 잘만 찾아냈다. (중략)

반면, 삼성이 해외 법인을 통해 조성한 비자금은 증거가 있어도 수사하지 않았다. 삼성 SDI가 삼성물산 해외법인과 거래하면서 만든 비자금이 대표적인 사례다.

"신영철 덕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치러진 2009년 5월 29일은 이건희에게도 잊을 수 없는 날이 됐다.
대법원은 이날 에버랜드 CB사건에 대해 최종 무죄판결을 내렸다. 누구나 예상했던 결과였다. 이보다 한 달 전, KBS는 "삼성에버랜드 CB헐값 발행 사건에 대해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무죄취지로 결론내렸다"고 보도했다. 아직 선고되지 않은 판결내용을 미리 보도한 것이다. 이런 보도는 언론 윤리에 어긋나는 것이지만, 내용만 놓고 보면 정확했다.
누구나 예상했던 판결, 방송이 이미 내용을 공개한 판결을 내놓으며 대법관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들의 속마음까지 들여다볼 방법은 없다. 그러나 어떤 안도감은 느꼈으리라고 보는 이들이 많다. 판결 날짜 때문이다. 이날 판결이 마침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과 날짜가 겹치면서, 여론의 관심을 비켜가게 됐다는 것.
상식대로라면, 대법관들이 영결식 장례위원이므로 선고를 연기하는게 자연스럽다. 실제로 일부 언론은 대법원 관계자의 말을 빌어 선고 연기 가능성을 시사 하기도 했다. (중략)
그러나 대법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 당일 선고를 고집했다. 온 나라를 뒤덮었던 노 전 대통령 애도 열기에 이날 선고가 낳을 반발이 묻혀버리길 기대했던 걸까. 만약, 그렇다면, 몹시 비굴한 일이다.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을 꿈꿨던 노 전대통령 앞에서도 몹시 부끄러운 노릇이다.

우리는 늘 지는 싸움만 한다.
이건희에게 227억원 배임죄를 새로 확정했으면서도 형량은 추가할 수 없다는 파기환송심을 끝으로 삼성 비리를 둘러싼 주요 법정 공방은 일단락 됐다. 사제단이 서울 제기동 성당에서 삼성비리에 관한 첫 기자회견을 연 게 2007년 10월 29일 이니까, 만 22개월이 걸린 셈이다.
결과적으로 이건희 일가는 삼성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법적 논란에서 풀려났으며, 주요 비리에 대해 면죄부를 받았다. 차명으로 관리하던 자산을 실명화하는 성과까지 거뒀으니, 얻은 게 많으 셈이다.
그리고 삼성으로부터 주기적으로 돈을 받았던 공직자들은 아무도 조사받지 않았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이명박 정부에서도 출세를 거듭했다. (중략)
반면, 사제단 대표인 전종훈 신부는  천주교서울대교구로부터 무기한 안식년 발령을 받았다. 삼성비리에 대해 1심 법원이 면죄부 판결을 내린 직후였다. 사제단 고문인 함세웅 신부 역시 보좌 신부나 수녀가 없는 작은 성당으로 발령이 났다. 원로 신부에 대한 조치로는 사례를 찾기 힘든 일이었다.

삼성 구조본과 참여정부
삼성에서 나는 늘 이방인이었다. 구조본 팀장들과 아무리 자주 어울려도 그들과 나 사이의 간극은 좁아지지 않았다. "회장을 향한 강력한 충성에 대한 강력한 보상" 이라는 체계에 길들여져있는 그들, 비리를 함께 모의했다는 공범자 의식으로 똘똘 뭉친 그들이었다. 이방인으로 끼어든 나는 그저 겉돌기만 할 뿐이었다.
그들은 내가 왜 구조본을 떠났는지 이해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방인인 내게는 그들이 쓰는 말 하나하나가 거북했다. 예컨데 구조본 팀장들은 "회장님과 그룹을 보위하기 위해" 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보위하다" 라니, 내게는 영 어색한 표현이었다. 꼭 북한에서 쓰는 말 같았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표현을 서슴지 않고 썼다.
구조본 공식 문서에서 "이건희", "회장" 등의 표현을 직접 쓰는 경우는 없었다. 이런 표현을 직접 쓰는 것은 불경스러운 일이었다. 이건희라는 말이 들어가야 할 자리에슨 대문자 "A"가 쓰였다. 이건희의 부인인 홍라희가 들어가야할 자리에는 A자 옆에 작은 점을 찍은 "A' "가 들어갔다. 이건희 일가에 대해서는 늘 이런 식이었다.  이건희의 아들인 이재용은 "JY",  큰 딸인 이부진은 "BJ", 작은 딸인 이서현은 "SH" 라고 적곤했다. 봉건제 시절, 중국에서는 공문서에 황제의 이름과 같은 글자를 함부로 쓸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관행이 21세기 민주사회에서 버젓이 남아 있는 것이다.

국정원과 삼성의 도청 경쟁
삼성구조본 감사팀의 감사기법은 수사정보기관을 능가한다. 이를테면 감사 대상자가 지방 어는 호텔에서 신용카드로 숙박대금을 결제하면 동시에 그의 위치와 결제내역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삼성 임직원 중에는 삼성카드를 가능한 한 쓰지않은 사람이 많다. 실제로 구조본 감사팀은 삼성임직원의 금융기관 거래내역, 휴대전화 통화내역 등을 임의로 열람했다. 이 과정에서 본인의 동의를 구한 경우도 있지만, 비 정상적인 방법도 흔히 썼다.

이건희의 생일잔치
2003년 1월 9일 저녁 6시 호텔신라 다이너스티홀, 이건희의 회갑잔치가 시작됐다. 이금희 아나운서가 이날 잔치의 사회를 맡았다. 지휘자 금난새, 유명 국악인, 성악가, 가수 등이 대거 출연한 자리였다. 메인 테이블에는 이건희의 아들과 딸, 사위, 며느리, 손자 등 직계가족이 앉았고, 주변 테이블에는 이날 오전에 1억 원씩 상금을 받은 자랑스러운 삼성인상 수상자부부들이 앉았다. 자랑스러운 삼성인상 수상 축하연은 이건희의 생일에 맞춰 열린다.  (중략)
이건희의 생일잔치는 공식행사를 빙자하여 공식비용으로 치러진다. 손님들에게는 식전 와인, 식간 와인, 식후 와인으로 상당한 수준의 것이 제공되고, 에피타이저로는 푸아그라(거위 간) 요리, 메인 요리로는 와규(일본에서 키운 소) 등심에 트뤼프 버섯으로 만든 소스가 나온다. 이건희 가족들의 테이블에는 프랑스에서 항공기로 공수된 냉장 푸아그라가 제공됐다. 반면, 다른 테이블에는 냉동 푸아그라가 제공됐다.  내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힘들었다. 잔치에서는 손님에게 더 좋은 음식을 주는게 정상 아닌가. (중략)
이건희 일가의 파티에는 연예인과 클래식 연주자 또는 패션모델 등이 동원된다. 가수의 경우,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보통 2~3곡 정도 부르고 3000만원 쯤 받아간다. 이건희 집안 파티에 불렸을 때 거절하는 연예인은 거의 없다고 알려져 있다. 다만, 예외가 있는데, 가수 나훈아씨다. 삼성 측에서 아무리 거액을 주겠다고 해도, 나훈아를 초청할 수는 없었다.
나훈아는 대략 이런입장이었다고 한다. "나는 대중 예술가다. 따라서 내 공연을 보기 위해 표를 산 대중 앞에서만 공연하겠다. 내 노래를 듣고 싶으면, 공연장 표를 끊어라". 한마디로 부잣집 애완견 노릇은 하기 싫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청장님께 인사했다는 피의자
1991년 충청남도 홍성지청에 발령이 났다. 이곳에서 근무할 무렵 대검찰청 공안부로부터 무리한 지시를 받았다. 선거 기간 중 여당 후보 1명을 불구속 입건, 야당후보 2명을 구속 수사하라는 것이었다. 초임 시절, 나는 공안검사를 맡기면 그만 두겠다고 했었다.  당시 공안 검사는 출세의 지름길 이었지만, 호남 출신인 내가 공안검사를 맡으면 운동권 학생 전담이 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의로운 학생들을 구속시키는 일은 양심상 도저히 할 수 없었다. (중략)
당시 받았던 어이없는 지시 가운데 기억나는게 많다. 한번은 대검 공안부장이 관내에 있는 전교조 간판을 떼어내라고 지시했다. 당시 법률에 따르면 노동조합이 아닌데. 노동조합이라고 표시했기 때문에 노동조합법 위반 이라는 게다. 벌금 20 만원에 해당하는 죄라는 것인데, 대검 고안부장은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집행하라고 했다. 내가 확인해 보니, 검찰청사 바로 앞 건물 2층에 "전교조 홍성지부"라고 유리창에 선팅이 되어 있었다. 나는 대검에 "관내 전교조 간판 없음" 이라고 보고하고 말았다.





Posted by 무대매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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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ad가  4월 출시를 앞두고 있습니다. 한국은 5월 이후쯤이나 되면 출시가 될거라고 하네요..

후배가 i-phone 구매를 앞두고 고민중일때  과감하게 구입하라고 종용했던 기억이 납니다.

덕분에  i-phone 을 사용해볼 기회가 있었는데 정말 매력적이였습니다...

i-pad가  우리 생활에 많은 변화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맥킨토시가 삼성에 큰 타격을 줄것 같다는 불김한 예감이 듭니다.

휴대폰에서 i-phone 에 밀리고 있고  또한 휴대전화 기능이 가능한 i-pad까지 출시된다면 

삼성과 LG 사의  휴대전화, 노트북, 미니노트북은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할것 같습니다.

더불어 마우스나 별도의 주변장치가 필요없는  i-pad 덕에  주변장치를 생산하는

업계에도 막대한 변화가 예상되는군요.

구글에 i-pad 홍보영상이 올라와 게시해봅니다.

                      
Posted by 무대매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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