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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1.12 일처다부가 가능했던 모소족 얘기를 듣고보니 7

그간 여행을 다니다  찍어 둔 사진의 양이 꽤 많아 졌습니다.
더이상의 게으름을 접어야 될 듯 싶어 어제부터 사진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 2007년 8월 12일 ~ 17일까지 5박 6일간의  중국 곤명, 여강, 중전, 석림의 여행 사진을  일정에 따라 정리해 봤습니다.  이중 정말 감동적인 곳은 여강고성과  옥룡설산, 차마고도, 중전(샹그릴라) 의 풍경 이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한국 관광객의 발길이 본격적으로 트이기 전이여서 그런지 외국인 관광객이 많았구요  수려한 자연경관과 때 묻지 않은 소수민족들의 모습이 감동적이였습니다.

8월  13일
02:30  곤명(쿤밍) 공항 도착 ▶   08:40  곤명공항 출발  ▶  09:20  여강(리지앙)공항 도착
10:00  흑룡담(=옥천)공원     ▶  11:10  백사벽화          ▶  12:40  운삼평(云杉坪)
14:20  리프트                      ▶  16:00  옥룡설산          ▶   21:00  여강고성

새벽에 쿤밍공항에 도착해 호텔에서 쪽잠을 자고 아침일찍 여강을 가기위해 다시 국내선 공항으로 이동했습니다.  기내에는 저희 일행 말고는 한국관광객은 없었구요 대부분이 중국인들이였는데  창 밖으로 펼펴진 여강의 협곡과 설산의 장관이  창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더군요.
 
흑룡담 공원에 도착해서 여강의 첫 이미지를 스캔하고   세계문화유산의 하나인 동파문자(상형문자)가 담겨져 있는 백사벽화로 이동했습니다.


▶ 흑룡담 공원

▶ 백사벽화 : 死(죽을사)자는 그림의 의미가 그대로 전달되는것 같습니다


▶ 나시족 마을인 백사 풍경

이곳 여강은 중국의 은 생산 32%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해발 2,400m에 위치한 고도이기도 하구요 예전 물물교환의 중심지로 남방의 실크로드라 불리는 곳입니다. 1996년  지진이 발생 한 후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특히 일반인들에겐 차마고도로 더 유명한 곳이지요.
여강의 옥룡설산(자연), 소수민족마을(역사), 나시족의 동파문자(문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 있다고 합니다.

차마고도(茶馬高道) : '마방(馬幇)'이라 불리는 상인들이 말과 야크를 이용해 중국티베트을 서로 사고 팔기 위해 지나다녔다. 이곳을 통해서 문화의 교류도 활발하였다. 전성기에는 유럽까지 연결된 적도 있었다. 해발고도 4000미터가 넘는 험준하고 가파른 이지만 경치가 매우 아름다운 길로 유명하다.
▶ 출처 : 다음 위키백과사전 

다음 일정으로 운삼평을 가기위해 이동했습니다. 운삼평은  해발 5,596m의 옥룡설산 뒷편에 위치한 곳으로 삼나무가 가득한  평야고원입니다. 고산 속 평지의 삼나무군락의 장관을 보기위해 리프트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해발 3000m 고원에 삼나무가 빽빽하게 둘러싸여있는 운삼평.
이곳 운삼평은 신선한 공기와 드넓은 목초지 그리고 뒷산인 옥룡설산의 쌓여있는 만년설과 눈이 녹아 맑은물이 흘러내리는 조망이 이채로웠 습니다. 좀처럼 보기힘든 조망에 아~ 감탄~ 또~ 감탄
 
▶ 옥룡설산에 쌓여있는 눈이 보이시죠

운삼평의 삼나무군락을 보고난 후 옥룡설산 중턱까지 가기위해 이동했습니다. 초입에는 야크에 관광객을 싣고 물 위를 통과 시켜주는 호객이 한창이였습니다. 


빡빡한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 여정을 푼 일행은 저녁 식사 후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여강고성으로 향했습니다.  여강고성은 중국에서도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라는데 천녀유혼, 무영검 등이 이곳에서 촬영됐다고 하더군요. 옛 건축물들을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여 조명과 관광상품을 조화롭게 배치해 고성의 멋스러움이 한 층 더해진것 같았습니다. 많은 일행들이 화려한 야경을 뒤로 사진촬영과 쇼핑 그리고 고성 특유의 주점문화를 탐닉하느라 여념이 없더군요.


여강은 윈난성에 속해있는데요  이곳은 나시족들이 주류를 이루고 삽니다. 나시족은 몽골족 유목민이 여강으로 이동하여 정착화 하면서 480년간 통치한 곳이기도 합니다. 원나라때 부흥기를 맞이하였고, 명나라 주원장에게 충성을 서약하여 명의 정부로 부터 자치를 인정받아 안정적으로 자족 통치가 가능했다고 하는군요.  나시족은 남자는 일하지 않고 여자가 생계를 책임지는데요 결혼은 반드시 양가 부모의 동의가 있어야만 가능했다고 합니다.  부모의 동의를 구하지 못한 연인들은 옥룡설산(해발 5,596m)에서 독초로 순정(자살)을 하는데  순정한 대부분의  남자는 상처투성의 얼굴로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숨져있는 반면  여성은 편안한 미소를 머금은채 순정했다고 하는군요.

그 이유가 참~재미있습니다.  대부분 남자가 먼저 독초를 먹었는데 남성의 순정을 믿지 못한 여성들이 확실히 순정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나무가지로 남자의 얼굴을 긁어 확인 해보기 때문이였다고 하는군요.  예나 지금이나  남자는 여자에게 있어  철 없는 존재인가 봅니다 ^^

나시족 마을에서 178km 떨어진 루구호에는  모계(母係)사회를 이루고 사는  모소족의 마을이 있습니다.  모소족은 일처다부의 사회였는데요 여성의 지위가 월등히 높았던 반면 남자들은 단순한 노동과 대리부의 역할만 담당하고 대신 육아나 양육권에 대한 권한은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럼 아이는 어떻게 태어나는지가 궁금해 가이드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모소족들은 연례행사로 여성의 나이가 16세가 되면  커플 맺기 행사를 마련했다고 합니다.
음식과 술을 곁들며 춤과 노래를 즐기다 호감이 가는 상대가 있으면  서로의 손을 잡고 손 바닥을 긁어 사랑표현을 했다고 하는데요.   호감도를 확인한 연인은 여성의 집에 마련된 꽃방(16세 처녀방)에서 사랑을 나누고  새벽 동이 트기 전  반드시 남자는 사라져야 한다고 합니다. 아빠를 알 수 없게 말이죠~
우리나라에  씨받이라는 잘못된 관습이 있었다면  모소족들은 이와 정 반대의 관습인 씨뿌림을 가지고 있었던 셈이지요. 죽기 전 까지 평생 1,000번의 씨를 제공해야 했다는 모소족 남자들이 왠지불행해 보입니다. (반대의견도 있을려나?)


8월  14일
09:30  여강고성  ▶  14:00  호도협  ▶    18:30  샹그릴라(중전) 도착

전날 일정이 늦은탓에 여강고성의 야경을 볼 수 밖에 없었던 일행들은  여강고성을 다시 한번 보고 싶다는 제안을 했습니다. 가이드와 협의끝에 여강고성에 다시 들러 수려한 풍경을 구경했답니다.


3시간여를 달려 호도협에 도착했습니다. 호도협은 해발 1,800m에 위치하고 있고 호랑이의 형상을 한 듯이 거친 산세와 협곡이 장관을이룬 곳이였습니다. 산사태가 자주 발생한다는 아슬아슬한 계곡 길을 셔틀버스로 이동한 후 일행은 협곡 아래부분까지 도보로 이동해 그 거대한 기세를 한껏 뽐내는 호도협의 위대함에 다시한번 탄성을 질렀습니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물길소리는 마치 천둥소리마냥 우르렁 거리더군요.


     아래 사진을 보면 차마고도의 흔적을 볼 수 있죠^^

   
호도협을 보고 난 후 일행은 서둘러  늙음과 병듬, 그리고 죽음이 없어 신비의 낙원이라 일컬어지는  샹그리라로 향했습니다.  영국 소설가인 제임스 힐튼(James Hilton)이 1933년 출판한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에서 지상낙원으로 묘사한 산골짜기 마을이 이곳과 가장 흡사하다고 판단한  중국정부는 1994년 9월 14일 기존 중전(중티엔)이라는 명칭을  샹그리라로 개명했다고 합니다.

'잃어버린 지평선'은 영국 외교관원이 히말라야 산맥을 넘다가 우연히 영원의 땅 샹그리라를 발견하고 영적인 평화와 사랑을 찾게된다는 내용의 책입니다.  샹그리라는 여러종교가 겸존하는 지역, 티벳소수민족들이 현존하고 신과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동물들이 함께 평하롭게 공존하는 곳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미국의 제32대 대통령 루즈벨트가 지은 대통령 휴양지 캠프 데이비드(Camp David)를 처음에는 이 소설의 가상 지명을 따 샹그리라로 지었다고 하니 낙원을 동경하는 인간의 마음은  같나 봅니다.

 



8월  15 일
09:30  송찬림사  ▶  11:25  장족마을(참파시식)  ▶  13:00  벽탑해, 소도해
15:40  중전고성  ▶  19:15  중전공항 출발

아침 첫 일정을 송찬림사에서 시작했습니다. 송찬림사 어귀까지 셔틀버스를 이용하여 이동한 뒤 도보로 송찬림사까지 가는길은  진흙탕 길에 정비가 되지 않는 흙길 이더군요.  이곳에 사는 소수민족들은 고유의상과 야크를 몰고나와 사진촬영을 해주면서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으려하면 대가를 요구하는 그들을 보며 관광객의 손길이 이곳 샹그리라의 순박한 소수민족까지 야박하게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에 씁슬 해 지더군요.





장족마을로 이동하여 참파(보리가루)를 맛보았는데 마치 우리네 미숫가루와 그 맛이 흡사했습니다. 아침나절에 머리가 지끈거리는 두통과 울렁거림이 시작되어  감기같아서 약을 사려 하는데  가이드가 증상이 고산병 같다고 하는 겁니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전날  메리설산의 경관을 보기위해  해발 5,000m 고도를 다녀온 후 숙소에서 부터 두통이 시작된것 같더군요. 고산병 증상이 마치 배멀미와 비슷했습니다. 머리는 띵하고 속은 울렁거리는게 음식냄새만 맡아도 토(吐)가 치밀어오르더군요. 한참을 고생했습니다.

장족마을을 벗어나 벽탑해, 소도해로 이동했습니다. 몽골의 대 초원을 연상케 만드는 평원과 고산지대의 나무에서만 서식한다는 흰수염식물,  울창한 침엽수, 맑은 공기는 고산병까지 한방에 날려버렸습니다. 
 

벽탑해, 소도해 관광을 마친 후 곤명으로 이동하기 위해 일행은 샹그리라 공항으로 이동했습니다. 예정보다 2시간이 넘게 항공기가 지연되는 바람에  중전공항에서 한참을 기다린 끝에 곤명으로 돌아와 숙소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8월  16일
09:30  원통사  ▶  10:50  취호공원  ▶  13:00  서산  ▶  16:40  석림

원통사는 당대에 지어진 사찰로 곤명시내에서 가장 오래된 그리고 가장 큰 불교 사찰이라고 합니다.   사찰 내에는 청 광서(光緖) 연간에 세워진 좌불상이 있고, 대전(大殿) 중앙에는 두 개의 10m 높이의 원주가 있는데요  각각 한 마리의 화려한 용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곳은 매년 음력 초하루 와 보름이면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합니다..

 
 
취호는 본래 하나의 만(灣)이었는데  수위(水位)가 점차 내려가면서 작은 호수가 되었다고 합니다. 크기는 소박하지만 늘어진 버드나무와 푸른 호수의 물이 특색을 이루어 1900년 초에 "취호" 라는 명칭이 생겼다고 하네요.



기암 절벽에 70년을 걸려 석굴과 각종 사원 그리고 길을 만들어낸 중국인들의 집념을 였볼수 있는 서산.  특히 높은 관직에 오른다는 "등용문"의 전설이 이곳 서산의 용문에서 파생되었다고 합니다.




곤명시내에서 차로 약 1시간반을 달려오니  석림 국립공원의 절경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공원 주차장부터 석림입구까지는 모노레일을 이용할 수 있지만 나머지는 다 도보로 이동해야 합니다.
곤명의 천하제일 명승지라는 석림. 이곳은 3억 5천년만년 전에 바다였으나 지각변동에 의한 융기작용으로 인해 이렇게 멋진 절경이 만들어 졌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제주에도 주상절리가 있지만  그 규모에 견주어 비교가 되지 않을정도 입니다.  곤명사람들은 자연으로부터 석림의 절경을 얻은 셈이니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입니까^^

 이곳 석림일대에는 이족들이 살고 있는데 석림내 셔틀버스와 공원관리를  전부 이족들이 관리할 수 있도록 중국정부에서 할애해 줬다고 합니다. 소수민족들을 관리하는 중국정부의 유화정책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2년 만에 정리한 사진과 글이다 보니 기억이 생생하지 않아 개괄 정리 했습니다. 
게으름이 낳은 결과 겠지요. 



 
Posted by 무대매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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